문화재 >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본문
백제 때 사리를 보관하는 용기로, 능산리 절터의 중앙부에 자리한 목탑 자리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출토 당시 이미 사리감이 훼손된 상태로 사리 용기는 없었다. 사리감은 위쪽은 원형, 아래쪽은 판판한 터널형으로 높이 74㎝, 가로·세로 50㎝이다. 감실 내부의 크기는 높이 45㎝ 정도로 파내었으며, 내부에 사리 장치를 놓고 문을 설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턱이 마련되어 있다.
감실의 좌·우 양 쪽에 각각 중국 남북조 시대의 서체인 예서(隸書)풍의 글자가 10자씩 새겨져 있다. 명문(銘文)에 의하면 성왕(聖王)의 아들로 554년 왕위에 오른 창왕(昌王)[위덕왕(威德王)]에 의해 567년 만들어 졌으며, 성왕(聖王)의 따님이자 창왕(昌王)의 여자 형제인 공주가 사리를 공양하였다는 내용으로 파악된다.
이 사리감은 백제 역사 연구에 새로운 금석문 자료로서 백제와 중국과의 문화교류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사리를 봉안한 연대와 공양자가 분명하고, 백제 절터로서는 절의 창건연대가 당시의 유물에 의해 최초로 밝혀진 작품으로서 그 중요성이 크다.
출토 당시 이미 사리감이 훼손된 상태로 사리 용기는 없었다. 사리감은 위쪽은 원형, 아래쪽은 판판한 터널형으로 높이 74㎝, 가로·세로 50㎝이다. 감실 내부의 크기는 높이 45㎝ 정도로 파내었으며, 내부에 사리 장치를 놓고 문을 설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턱이 마련되어 있다.
감실의 좌·우 양 쪽에 각각 중국 남북조 시대의 서체인 예서(隸書)풍의 글자가 10자씩 새겨져 있다. 명문(銘文)에 의하면 성왕(聖王)의 아들로 554년 왕위에 오른 창왕(昌王)[위덕왕(威德王)]에 의해 567년 만들어 졌으며, 성왕(聖王)의 따님이자 창왕(昌王)의 여자 형제인 공주가 사리를 공양하였다는 내용으로 파악된다.
이 사리감은 백제 역사 연구에 새로운 금석문 자료로서 백제와 중국과의 문화교류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사리를 봉안한 연대와 공양자가 분명하고, 백제 절터로서는 절의 창건연대가 당시의 유물에 의해 최초로 밝혀진 작품으로서 그 중요성이 크다.
기본 정보
문화재유형 | 국보 |
---|---|
지정호수 | 288 |
문화재명 |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
문화재명2 | 扶餘 陵山里寺址 石造舍利龕 |
문화재분류 | 유물 |
문화재분류2 | 불교공예 |
문화재분류3 | 사리장치 |
문화재분류4 | 사리장치 |
수량 | 1점 |
지정(등록일) | 19960530 |
소재지 상세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국립부여박물관 (동남리,국립부여박물관) |
시대 | 백제시대(567년)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국립부여박물관 |
관련 이미지 정보
국보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국보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석조사리감앞면명문의탁본
국보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석조사리감의 뒷면
국보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2014년 국보 대관 앱사진)
컨텐츠 저작권
문화재청 및 공공데이터포털의 Open API 서비스를 통해서 구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