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 창녕 영산읍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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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한다.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에 있는 성으로, 원래 흙으로 쌓은 것을 조선시대에 돌로 다시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성을 쌓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창녕읍지』에는 읍성이 둘레가 3,810척(약 1154m), 높이 12척 5촌(약 4m)으로 조선 선조(재위 1573∼1618) 때 쌓았으나 그 후 무너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 남아 있는 성벽은 길이 106m, 높이 2.5m, 폭 1.5m 정도이다. 성은 거대한 돌을 이용하여 기초를 마련하고 그 위에 돌을 정교하게 쌓아올렸다. 지금은 시가지와 경작지로 바뀌어 대부분 붕괴되거나 파괴되었고, 성 안에는 연못이 있었다 하나 메워졌다.
조선시대에는 거의 내륙에 읍성을 쌓지 않았는데 반해 영산면은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근처의 화왕산성을 중심으로 곽재우(1552∼1617) 장군이 의병을 일으킨 곳이어서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에 있는 성으로, 원래 흙으로 쌓은 것을 조선시대에 돌로 다시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성을 쌓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창녕읍지』에는 읍성이 둘레가 3,810척(약 1154m), 높이 12척 5촌(약 4m)으로 조선 선조(재위 1573∼1618) 때 쌓았으나 그 후 무너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 남아 있는 성벽은 길이 106m, 높이 2.5m, 폭 1.5m 정도이다. 성은 거대한 돌을 이용하여 기초를 마련하고 그 위에 돌을 정교하게 쌓아올렸다. 지금은 시가지와 경작지로 바뀌어 대부분 붕괴되거나 파괴되었고, 성 안에는 연못이 있었다 하나 메워졌다.
조선시대에는 거의 내륙에 읍성을 쌓지 않았는데 반해 영산면은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근처의 화왕산성을 중심으로 곽재우(1552∼1617) 장군이 의병을 일으킨 곳이어서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기본 정보
문화재유형 | 시도기념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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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호수 | 59 |
문화재명 | 창녕 영산읍성지 |
문화재명2 | 昌寧 靈山邑城址 |
문화재분류 | 유적건조물 |
문화재분류2 | 정치국방 |
문화재분류3 | 성 |
문화재분류4 | 성지 |
수량 | 9,322㎡ |
지정(등록일) | 19830806 |
소재지 상세 | 경남 창녕군 영산면 성내리 |
소유자 | 창녕군 외 |
관리자 | 창녕군 |
관련 이미지 정보
영산읍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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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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