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 장성 봉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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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암 변이중(1546∼1611)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변이중은 조선 중기 문신이며 학자로 군사 전략에 밝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큰 공을 세운 분이다. 『총통화전도설(銃筒火箭圖說)』과 『화차도설(火車圖說)』 등의 논문을 써서 화차를 제조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숙종 23년(1697)에 세운 이 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년(1871)에 폐쇄된 후 1976년과 1984년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변경윤·윤진·변휴·변윤중을 추가로 모셔 현재 다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대문 격인 외삼문을 들어서면 앞쪽에 교육 공간을 조성하고 뒤쪽에 제사 공간을 배치하였다. 교육 공간으로는 유림의 회합 장소이면서 교육 장소로 사용하던 성경당과 유생들이 숙식하던 곳인 훈덕재, 경의재가 있다. 제사 공간으로는 다섯 분의 위패를 모신 종앙사를 아담한 규모로 마련해 놓았다. 화차를 제조하던 유적지로서 1982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하였으며 해마다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변이중은 조선 중기 문신이며 학자로 군사 전략에 밝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큰 공을 세운 분이다. 『총통화전도설(銃筒火箭圖說)』과 『화차도설(火車圖說)』 등의 논문을 써서 화차를 제조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숙종 23년(1697)에 세운 이 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년(1871)에 폐쇄된 후 1976년과 1984년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변경윤·윤진·변휴·변윤중을 추가로 모셔 현재 다섯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대문 격인 외삼문을 들어서면 앞쪽에 교육 공간을 조성하고 뒤쪽에 제사 공간을 배치하였다. 교육 공간으로는 유림의 회합 장소이면서 교육 장소로 사용하던 성경당과 유생들이 숙식하던 곳인 훈덕재, 경의재가 있다. 제사 공간으로는 다섯 분의 위패를 모신 종앙사를 아담한 규모로 마련해 놓았다. 화차를 제조하던 유적지로서 1982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하였으며 해마다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기본 정보
문화재유형 | 시도기념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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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호수 | 54 |
문화재명 | 장성 봉암서원 |
문화재명2 | 長城 鳳岩書院 |
문화재분류 | 유적건조물 |
문화재분류2 | 교육문화 |
문화재분류3 | 교육기관 |
문화재분류4 | 서원 |
수량 | 일원 |
지정(등록일) | 19811020 |
소재지 상세 | 전남 장성군 장성읍 화차길 159 (장안리) |
시대 | 1697년 최초창건, 1977년 복원 |
소유자 | 황*** |
관리자 | 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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