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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인 충숙공 이수(李晬, 1569∼1645)의 묘이다. 이수는 덕양군 이기(李岐, 1524~1581)의 손자이자 풍산군 이종린(李宗麟, 1538~1611)의 아들이다.
학문이 뛰어나 15세 나이로 부정(副正)에 봉해졌고, 임진왜란 때에는 선전관(宣傳官)으로 활약하였다.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우고, 정묘호란 때 인조를 강화도로 호종하여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소덕대부(昭德大夫)에 올라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총관(都摠管)을 역임하였다. 1645년 남소문동 집에서 별세하였고 이후 정1품 벼슬만 기록할 수 있는 현록대부(顯錄大夫)에 올랐다.
묘역은 부인 정씨와 함께 매장된 쌍분(雙墳 ; 두개의 봉분)의 형태이다. 묘제(墓制)는 원형을 잘 보유하고 있으며, 석물도 옛것 그대로이다. 봉분 아래에는 팔각형태로 둘레석을 쌓아 보호하고 있다. 이는 전주이씨 덕양군파 가족 묘역이 모두 유사한 형태인데, 왕실의 친족과 연관성 있는 묘제로 추정된다. 두 봉분 사이에는 묘표(墓表 ; 무덤 주인의 이름 등을 새긴 비석)가 1기 조성되었다.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 ; 둥근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이며, 비문은 김집이 짓고 글씨는 송준길이 썼다. 하단에는 망주석과 문석인이 1쌍씩 배치되었다. 망주석은 비교적 소규모인데, 몸돌부분에 손잡이 모양의 귀(耳 ; 몸돌부분에 조각된 손잡이 형태의 조형) 장식을 조각하였다. 문석인은 양관조복형(梁冠朝服形 ; 머리에는 양관을 쓰고, 조복을 입은 문신의 형태)인데, 세부장식이 간략화 된 17세기의 평면적인 석인상이다. 묘역 입구의 신도비는 1897년(광무 1)에 건립한 것으로 이재(李縡)가 찬하고 10대손 이승휘(李承徽)가 글씨를 썼다.
이 묘역은 17세기 후반 묘제와 석물의 원형이 잘 보관되어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기본 정보
문화재유형시도기념물
지정호수54
문화재명이수선생묘
문화재명2李睟先生墓
문화재분류유적건조물
문화재분류2무덤
문화재분류3무덤
문화재분류4기타
수량1기
지정(등록일)19800602
소재지 상세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로 52 (궁내동)
시대조선시대
소유자전주이씨 덕양군파 종회
관리자전주이씨 덕양군파 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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