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 양양진전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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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a.go.kr/unisearch/images/monument/1648177.jpg)
진전사는 우리나라에 선종을 들여온 도의선사가 창건한 절이자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이 14세 때 출가한 절로 이름나 있다.
도의선사는 당나라의 서당지장(709∼788)에게 공부하고 귀국하여, 당시 교종불교가 절대적이었던 신라 불교에 선종을 소개하였다. ‘중국에 달마가 있었다면 신라에는 도의가 있었다’고 평가를 받는 분으로 도의선사의 법맥은 염거화상과 보조선사로 이어져 한국 불교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 절이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으나 조선왕조의 폐불정책 때문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을에는 절이 없어질 때 스님들이 절터 위에 있는 연못에 범종과 불상을 던져 수장하고 떠났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져 온다.
발굴조사 결과, 절 이름을 알 수 있는 ‘진전(陳田)’이란 글씨를 새긴 기와조각과 연꽃무늬 수막새기와, 당초무늬 암막새기와, 물고기무늬 기와 조각들이 출토되었다. 현재 삼층석탑(국보)과 석조부도(보물)가 남아있다.
진전사터는 우리나라 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지닌 유적이며, 신라 불교가 교종에서 선종으로 교체되는 시기에 그 싹을 틔운 곳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도의선사는 당나라의 서당지장(709∼788)에게 공부하고 귀국하여, 당시 교종불교가 절대적이었던 신라 불교에 선종을 소개하였다. ‘중국에 달마가 있었다면 신라에는 도의가 있었다’고 평가를 받는 분으로 도의선사의 법맥은 염거화상과 보조선사로 이어져 한국 불교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 절이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으나 조선왕조의 폐불정책 때문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을에는 절이 없어질 때 스님들이 절터 위에 있는 연못에 범종과 불상을 던져 수장하고 떠났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져 온다.
발굴조사 결과, 절 이름을 알 수 있는 ‘진전(陳田)’이란 글씨를 새긴 기와조각과 연꽃무늬 수막새기와, 당초무늬 암막새기와, 물고기무늬 기와 조각들이 출토되었다. 현재 삼층석탑(국보)과 석조부도(보물)가 남아있다.
진전사터는 우리나라 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지닌 유적이며, 신라 불교가 교종에서 선종으로 교체되는 시기에 그 싹을 틔운 곳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http://i.imgur.com/w4QIw2I.gif)
문화재유형 | 시도기념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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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호수 | 52 |
문화재명 | 양양진전사지 |
문화재명2 | 襄陽陳田寺址 |
문화재분류 | 유적건조물 |
문화재분류2 | 종교신앙 |
문화재분류3 | 불교 |
문화재분류4 | 사찰 |
수량 | 27,131㎡ |
지정(등록일) | 19821103 |
소재지 상세 | 강원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100번지 |
소유자 | 국가 |
관리자 | 양양군 |
![](http://i.imgur.com/w4QIw2I.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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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진전사지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monument/2022090510352100.jpg)
양양진전사지1 (촬영년도 : 2016년)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monument/2022090510352101.jpg)
양양진전사지_삼층석탑 (촬영년도 : 2016년)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monument/2022090510352102.jpg)
양양진전사지_삼층석탑1 (촬영년도 : 2016년)
![](http://i.imgur.com/w4QIw2I.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