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 보은 성운 묘소 및 묘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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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부정(副正) 성세준의 아들인 대곡(大谷) 성운(1497∼1579) 선생의 묘소와 묘갈(墓碣:윗부분을 둥글게 다듬어 세운 작은 묘비)이다.
중종 때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명종 즉위년(1545)에 일어난 을사사화로 인해 그의 형이 화를 입자 보은 속리산에서 숨어 살았다. 조정에서는 여러 차례 벼슬를 내렸지만 모두 사절하였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서경덕·이지함 등과 사귀면서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그가 죽자 선조가 제문을 내려 슬퍼하였으며 뒤에 승지의 벼슬을 내렸다. 그는 자식이 없어 처남인 군수 김천부가 서경덕·이지함 등과 함께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봉분 앞에 있는 묘비는 선조 12년(1579)에 성혼이 글을 지어 세운 것이다. 묘갈은 현종 4년(1663)에 송시열이 글을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쓴 것이다.
중종 때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명종 즉위년(1545)에 일어난 을사사화로 인해 그의 형이 화를 입자 보은 속리산에서 숨어 살았다. 조정에서는 여러 차례 벼슬를 내렸지만 모두 사절하였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서경덕·이지함 등과 사귀면서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그가 죽자 선조가 제문을 내려 슬퍼하였으며 뒤에 승지의 벼슬을 내렸다. 그는 자식이 없어 처남인 군수 김천부가 서경덕·이지함 등과 함께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봉분 앞에 있는 묘비는 선조 12년(1579)에 성혼이 글을 지어 세운 것이다. 묘갈은 현종 4년(1663)에 송시열이 글을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쓴 것이다.
기본 정보
문화재유형 | 시도기념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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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호수 | 70 |
문화재명 | 보은 성운 묘소 및 묘갈 |
문화재명2 | 報恩 成運 墓所 및 墓碣 |
문화재분류 | 유적건조물 |
문화재분류2 | 무덤 |
문화재분류3 | 무덤 |
문화재분류4 | 봉토묘 |
수량 | 일곽 |
지정(등록일) | 19860428 |
소재지 상세 | 충북 보은군 보은읍 성족리 산35번지 |
시대 | 1579(선조12) |
소유자 | 경주김씨종중 |
관리자 | 경주김씨종중 |
관련 이미지 정보
성운묘갈 보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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