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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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귀환 동포와 한국전쟁 중 부산으로 밀려드는 피란민들의 거주 공간 확보를 위해 ‘소(牛) 막사(幕舍)’를 주거시설로 변용(變容)한 것으로 당시 피난민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산업화 시기 인근 지역에 조성된 공장, 항만 등으로 인해 이곳으로 유입된 노동자들의 생활공간으로서 오늘날까지도 그 기능을 유지해 오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오늘날 부산시 우암동 일대의 바다를 매립하여 산업시설과 함께 우리나라의 소를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위생검역소 및 소막사 등의 시설을 조성. ‘우암동’이라는 지명은 오래전부터 이곳에 소(牛)의 형상을 한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명칭이라 전해져 오고 있으나, 바다를 매립하는 과정에서 지형 변화로 인해 현재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음.
기록에 의하면, 당시 건립된 우막사는 모두 19동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암동 소막사’ 역시 그 중 한 곳임.
‘우암동 소막사’는 일제강점기 소(牛)들이 머물던 막사의 기능과 함께 해방 후 및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난민들의 주거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후 산업화로 인해 도시로 몰려든 영세한 노동자들의 생활공간으로서 오늘날까지도 그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는 등 특수한 역사적 배경을 간직하고 있음.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오늘날 부산시 우암동 일대의 바다를 매립하여 산업시설과 함께 우리나라의 소를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위생검역소 및 소막사 등의 시설을 조성. ‘우암동’이라는 지명은 오래전부터 이곳에 소(牛)의 형상을 한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명칭이라 전해져 오고 있으나, 바다를 매립하는 과정에서 지형 변화로 인해 현재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음.
기록에 의하면, 당시 건립된 우막사는 모두 19동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암동 소막사’ 역시 그 중 한 곳임.
‘우암동 소막사’는 일제강점기 소(牛)들이 머물던 막사의 기능과 함께 해방 후 및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난민들의 주거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후 산업화로 인해 도시로 몰려든 영세한 노동자들의 생활공간으로서 오늘날까지도 그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는 등 특수한 역사적 배경을 간직하고 있음.
![](http://i.imgur.com/w4QIw2I.gif)
문화재유형 | 국가등록문화유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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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호수 | 715 |
문화재명 |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 |
문화재명2 | 釜山 牛岩洞 소幕마을 住宅 |
문화재분류 | 등록문화유산 |
문화재분류2 | 기타 |
문화재분류3 | 주거숙박시설 |
수량 | 1동(422.5㎡) |
지정(등록일) | 20180508 |
소재지 상세 | 부산광역시 남구 우암동 189-1123 |
시대 | 해방이후 한국전쟁 |
소유자 | 부산광역시 남구청 |
관리자 | 부산광역시 남구청 |
![](http://i.imgur.com/w4QIw2I.gif)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1)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register/2018062816404100.jpg)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2)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2023년 정기조사)
![](http://i.imgur.com/w4QIw2I.gif)